정병국의 푸른 회화 (김용대, 미술평론가)
1.
정병국의 화면에는 몇 개의 색깔들만 등장한다.
푸른색, 그 대비로서의 회색, 그리고 강조되는 단순한 색깔들 뿐이다. 붉은색을 중심으로 노랑색과 녹색이 등장하기는 하나, 주된 색깔은 푸른색이다. 그 푸른색은 화면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이나 소품들에 비해서 배경처럼 위치하고 있다.
중성적인 회색과 대비를 이루면서 화면에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중심인물에 대하여 강하게 발언하고 있다. 회색 뒤에 등장하는 밝은 꽃들이나 풀들은 하잘 것 없이 보일 수도 있으나 중심이 주제가 되는 인물을 회화적으로 설명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어느 화면에서나 위에는 푸른색, 아래는 중성적인 회색으로 분할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상할 수 있는 하늘이나 땅이 아닌, 어떤 충돌 또는 의미로서 읽혀질 수 있다. 화면 위에 푸른색은 강한 대비감으로 인하여 작품을 보고 난 한참 후에도 중심이 되는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의 심리적 뇌파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이것으로 정병국은 의도하고 있는 인물의 내면적 심리를 담아내고 있으며 현대인의 고뇌를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정병국은 이 푸른색의 발언을 위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1980년대 그의 작업은 물감을 혼합하지 않은 원색 그 자체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특히 푸른 배경은 색감이 가진 본래의 느낌을 무화시키면서 어떤 상징을 암시하고 있다. 그 배경은 주제로 그려진 나무나 중심이 되는 뒷모습의 사람들의 이미지를 역전시키고 있다. 색감의 차원이 아닌 구체적인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오히려 앞에 그려진 인물보다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많은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물감을 그대로 사용한 푸른 바탕은 그 푸른 물성의 입자들을 동원하여 인간의 내면 속에서 꿈틀거리는 원초적 본능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정병국이 지향하는 그 푸른 바탕은 자연의 풍경 같기도 하며 '물성화된 감정' 같기도 하며 앞에 그려진 인물의 잠재의식을 읽어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그 인물은 어느덧 얼굴 없는 사람이 되고 물성 그 자체를 그대로 바른 그 푸른 바탕은 하나의 자율적인 언어가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오랜 그의 생활 속에서 배어나온 '인간 삶의 집약'일 수도 있다. 오히려 강한 시각적 발언이다. 익명적인 사람의 뒷모습을 통한, 인간 내면 속에 잠재하고 있는 함축된 원시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경우는 사람인지 배경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혼돈된 화면을 부여주고 있는데 인간이 자연과 혼합되어 자연의 일부처럼 자연이 인간의 일부처럼 서로 혼미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 경우 모든 이미지는 본래의 성격을 벗어버리고 정병국의 메신저가 되고 있다. 알 수 없는 이미지, 뒤틀어진 형태, 그리고 비정상적인 비례 등이 사실보다 강렬한 진정성을 전달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날 것 같은, 지극히 유치한 푸른 바탕, 그리고 그 위에 부유하듯이 그려진, 붉은색의 깊은 맛은 하나의 현실을 뛰어 넘은, 정병국이 만들어낸 초현실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정병국이 어린 시절 꿈꾸었던 것들이 잠재의식 속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가 단숨에 비집고 일어나 불현듯이 생겨난 '정병국의 진정성'이다.
이러한 경향의 작업들은 1990년에 들어서면서 예비군복 같은 사회의 상징적인 옷의 껍데기로 변모되었는데, 그 옷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듯이 표현되었다.
껍데기만 있는 인간의 허상을 보는 듯하다.
그 허상 속에 있었던 인간의 진정성은 무엇이었을까.
1990년대 후반에 이르면 정병국은 사람의 정면의 모습을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상황을 설정하여 인물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소품으로서 자연물이나 풀, 그리고 동물들이 등장한다. 어떤 경우는 최소한의 이미지만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소거하여 초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하곤 했다. 제복을 입고 훈장을 단 완벽한 복장의 군인, 거울을 쳐다보고 있는 누드의 여인을 거울 속에서 바라본 시선, 정장을 입은 신사의 반쯤 잘린 얼굴 등 인간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어떤 내용을 함축하고 강하게 전달하려는 정병국의 숨겨진 의도이다. 마침내 그는 왜곡과 변형, 비현실성, 비사실적인 서술을 통하여 진지하게 인간의 원시성을 드러내고 있다.
2000년대에 이르면 그의 작업에는 벌거벗은 누드의 남성들이 등장하여 자연 속에서 어떤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성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남성. 실체는 보이지 않되, 무언인가에 힘을 작용시키는 근육질 남성의 굳센 모습들.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무엇인가에 개입하는 사람들.
고뇌하나 표정 없는 석고 같은 인물의 어색한 자세.
누드의 남자, 화려한 꽃,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날림의 푸른색.
이처럼 부조화로 이루어진 비상식적 화면은 정병국이 의도하는 원시성의 세계이며, 이 알 수 없는 난해한 색감은 바로 정병국이 의도하는 아름다움으로서의 인간적 메시지가 되고 있다.
허공을 바라보거나, 어린 소년이 누드로 서 있거나, 건장한 군인들의 조깅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흩날리는 꽃잎.
고속도로 변 코카콜라 자동판매기 옆에 서 있는 누드의 여인.
누드의 미남자가 의자에 걸터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과 화려한 플라스틱 같은 꽃들.
강가의 빈 배위에 서 있는 발가벗은 소년 부다.
이 모든 것들이 어떤 의도에 의해서 발언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중에 흩날리는 낙엽을 그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알아채게 하듯이, 정병국의 작업들은 이미지의 허상을 통하여 살아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추상적 힘'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다. 가득함과 비어있음, 양과 음의 양의적 지점에서 고뇌하고 있는 인간의 실존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정병국이 연출하는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덧없음이다.
3.
정병국은 단순한 외형의 표현만으로 예술작업이 될 수 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사물의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예술의 의미를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작업이 단순한 감각경험으로부터 깊은 사유와 되새김을 통해 거듭난 사고 체계임을 의미한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실존적 철학을 근거로 하여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인식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의미이다.
한편으로는 그의 작업은 희극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가능성 속에서 '본질주의'라는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위해 그는 무모하리만큼 강렬하고 원시적인 색감을 시도하고 있다. 인간의 본질적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통하여 일종의 억압을 시도하고 있다.
평범한 것들에 대한 그의 강력한 변용과 왜곡은 인간의 원시성과 이중성을 회화적인 어법으로 서술하려는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되 화면에서 더 이상 평범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되었다. 이처럼 평범한 요소들이 하나의 예술적인 본질을 밝혀내는 요소로 가능하게 되는 것은 평범함을 뛰어넘는 그 나름의 철학적 반영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본질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가 지시하는 외형적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미지에 감추어져있는 이중적 속성이다. 그의 이러한 두 가지 접근은 화면을 환기 시키는 긍정적 요소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극단적 대비는 인간의 진실을 예술로 바꾸는 그의 뛰어난 구성능력과 싶은 사유에 근거한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쉽게 도달 할 수 없는 어떤 절박감을 하나의 언어로 환기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그림을 볼 때 화면을 형성하고 있는 항목들에게만 주목하게 되면 그의 심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속성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평범한 것들에의 극단적인 변형을 통하여 인간의 실존감을 제시하고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 보이는 비현실적인 색깔들로 뒤덮여있는 상상의 세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상상력은 오히려 철저한 실존과 생활 속에서 배어난 깊은 우수의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감각적인 표현은 시각적으로 인간의 눈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으나 그 자극은 결국 우리의 심연을 건드리는 하나의 메신저이다.
이처럼 특정한 사유를 보편적으로 표현하는 정병국의 뛰어난 능력은 시각적 어법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우리시대를 특징짓는 메타포가 되고 있다.
Jung Byung Guk's Blue Paintings (KIM YOUNG DAE)
1.
Only a few colors appear in Jung Byung Guk's pictures. All you have are blue, contrasting grey, and simple colors that are emphasized. Yellows and greens appear with red at the center, but the main color is blue. That blue color is positioned like a background in comparison to human figures and objects that make up the center of the picture. It forms a contrast with the neutral grey and produces a mysterious atmosphere, speaking forcefully about the central figure. The bright flowers or grasses appearing against the grey may seem insignificant, but they are instruments that explain, in a painterly way, the figures that are the central theme. In any given picture, there is the division into blue in the upper part and neutral grey in the lower part. This can be read, not as the sky and the earth, as would generally come to one's mind, but rather as a certain collision or meaning. The blue color in the upper part of the picture, due to its strong feeling of contrast, goes beyond the central image and endlessly stimulates our psychological brain waves, even long afterwards. Through this, it seems, Jung Byung Guk is portraying the inner psychology of his intended human figures and intimating the afflictions of the modern man. In the end, it would not be an overstatement to say that Jung Byung Guk is painting his pictures for the sake of lending a voice to this blue color.
2.
His works in the 1980's used mostly primary colors without mixing the paint, and the blue background, in particular, suggests a certain symbolism, nullifying the color's original feel. That background reverses the images of the trees painted as subjects or central human figures facing away from us. They seem to hold a certain specific message, on a different level than that of color. They contain even more messages than the human figures painted in the foreground. They play the role of bringing many stories to mind.
The blue background, using the paint as is without mixing it with anything else, mobilizes the grains with their blue physical properties and reveals the primal instinct that writhes inside man. The blue background that Jung Byung Guk strives for, which is hard to determine whether it is the sky or the sea, is like a natural scenery, and is like a "materialized emotion," seemingly reading the subconscious of the painted human figure in the foreground. That human figure unawares becomes a faceless person, and the blue background that has put on the material properties themselves has become a kind of autonomous language.
For him, the back of the person appearing in the picture could be the "concentration of human life"that exudes from his own life. It is a rather strong visual statement. It reveals, through the back view of an anonymous person, an implicit primitiveness latent in man. In some cases he shows a confused picture where one cannot tell man and background apart; man mixes with nature, and as though man were a part of nature, as though nature were a part of man, they present a mutually confused situation. In this case all images shed their original characteristics and serve as Jung Byung Guk's messengers. Inscrutable images, distorted shapes, and abnormal proportions have the effect of conveying an authenticity that is more powerful than reality.
Such raw, exceedingly puerile blue background, and the deep red-colored flavor painted above it as if suspended, is a kind of surreal world that transcends reality, created by Jung Byung Guk. This world is the "authenticity of Jung Byung Guk," the things that Jung Byung Guk had dreamed of in his youth and which had settled like sediment in his subconscious, suddenly coming into being. The work of such tendencies metamorphosed in the 1990's into an outer shell of clothing, a social symbol, like a reservist uniform; the clothing was expressed as if a person actually existed. It is like looking at a virtual image of man, with only the outer shell there. What would it have been, the human authenticity that was in that virtual image?
In the late 1990's, Jung Byung Guk expressed the frontal image of man in a very specific way. He establishes the situation, and natural objects, grass, and animals are presented as various objects that explain the human figure. In some cases, he would maintain only the minimum image, eliminating as much as possible, and presenting a surrealistic situation. He portrays "abnormal" human situations, such as the perfectly uniformed soldier wearing medals, the nude woman looking into a mirror gazed through the mirror, and the half-cropped gentleman in a suit. This is the hidden intention of Jung Byung Guk, who is trying to imply and forcefully convey a certain meaning. Ultimately, he earnestly reveals man's primitiveness through distortion and transformation, unreality, and unrealistic depiction.
In the 2000's, naked men appeared in his work, portraying certain situations in nature.
A neutered man, whose sex cannot be determined.
Strong images of muscular men who are applying strength to something, although its substance cannot be seen.
People who are involved in something, although what they are doing is unknown.
The awkward posture of a human figure in anguish but who is expressionless, like a plaster cast.
A nude man, a splendid flower, and a slapdash blue color that seems unlikely to go with them.
Preposterous pictures consisting of such incongruity are the primitive world that Jung Byung Guk intends, and this inscrutable, abstruse color becomes precisely the human message, the beauty he intends it to be.
Petals blowing in the wind, against a background of someone gazing into the void, a boy standing in the nude, or strong soldiers jogging.
A nude woman standing next to a Coca Cola vending machine by the side of a highway.
A handsome man sitting on a chair looking straight ahead, and showy, plastic-like flowers.
A naked Buddha boy standing in an empty boat by the riverbank.
It is a situation where all of these things are being expressed according to some intent. Like making one aware of the invisible wind by painting leaves blowing in the air, the works of Jung Byung Guk focus on "a certain abstract power,"which is alive through the virtual images but not visible to the eye. He is earnestly posing a question about the existentiality of man, who suffers in the ambiguous space between fullness and emptiness, and positive and negative. This is precisely the ephemeralness of time and the existence of man that Jung Byung Guk portrays.
3.
Jung Byung Guk's attitude is that a work of art cannot be made simply through the expression of the external. He believes that the meaning of art cannot be conveyed by recreating visible objects as they are. This signifies a system of thought arrived at through profound thinking and rumination, reborn from simple sensory experiences. This means that his works are processes of earnestly asking and understanding what the meaning of life is, on a foundation of man's existential philosophy.
On the one hand, his works possess the possibility of farce, and that possibility carries the profound implication of "essentialism."He attempts intense and primal color sense, almost to the point of temerity. Although of the belief that there exists an essential identity of man, he attempts a kind of suppression through his pictures. His strong transfigurations and distortions of commonplace things become a method by which he depicts man's primitiveness and duality through a painterly mode of expression. Therefore, while the elements that make up his works are not special, they become things that no longer exist in a commonplace way.The reason why such commonplace elements function as elements that elucidate a kind of artistic essence is because they are reflective of a philosophy that transcends the commonplace.
There are two methods the essence he is thinking of. One is an external method dictated by the images appearing in the pictures, and the other is the dualistic properties hidden in the images. These two approaches of his function as positive elements which awaken the picture, and the extreme contrast is based on his outstanding ability for composition and profound thinking. This acts as a power that converts a certain urgency, which art does not easily attain in modern society, to a kind of language. Therefore, if in looking at a picture we focus our attention only on the items that make up the picture, we would not be able to understand the properties that he wants to speak about deep inside.
His pictures, which through extreme transformation of commonplace things present a feeling of man's existence and exposes man's real nature, also seem to be an imaginary world enveloped in unrealistic colors. Such imagination, on the contrary, starts from the opposite side, one of a deep melancholy that has permeated through a thoroughly existential life. Thus the sensory expressions that one feels from his works give powerful visual stimulation to the human eye, but ultimately that stimulation is a messenger that touches something deep within us. Jung Byung Guk's superb ability to universally express such particular thinking raises the visual grammar's level of completeness, and has become a metaphor that defines our era.